한국의 한 여성이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는데 수면제가 가짜라서 죽지 않고 살아 났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친구 포레스터 부인의 가짜 진주목걸이를 빌렸다 잃어버려 그것을 되갚느라 10년을 죽을 고생한 로와젤 부인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모파상의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 때는 애교가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기는 해도 있는 사람에게 가서 처지를 말하고 빌려서 치장하는 애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빌릴 필요가 없습니다. 눈 딱깜고 하나 사면 됩니다. 짝퉁하나면 아쉬운대로 ok입니다. 남은 몰라도 나는 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짝퉁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진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 속에서 조용히 화가 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입니다.
짝퉁이란 말은 2004년부터 국어사전에 올라 갈 만큼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었고, 보편화 된 용어가 되었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짝퉁이란 말은 사이비, 곧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란 말입니다. 사이비(似而非)란 말은 맹자의 진심장구 하편(盡心章句 下篇)에 나오는데 이곳에서 공자가 향원이라는 사람을 싫어했고, 그 이유가 향원이 사이비 학자였다는 것에서 그 출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짝퉁이 있다는 말은 진짜 명품이 있다는 말로 기술이 하도 좋아 진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거니와 명품인 진짜의 값이 너무도 비싸기 때문에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 짝퉁입니다. ‘사이비’라는 단어나 ‘가짜’라는 단어보다는 법률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덜 문제가 되는듯 보여 쉽게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한 것입니다.
짝퉁의 심리학은 어디까지나 욕심에 있다고 진단 합니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하면 그 자체로서 극상품은 아닐지라도 가짜는 아닌 진짜인 법인데 욕심으로 그것을 꾸미고 변조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지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욕심 때문에 짝퉁 찾다가 빠지는 비극을 간단히 경고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약1:5의 말씀인데 짝퉁은 물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논문, 학력, 경력, 각종 집회, 설교, 인격에 이르기까지 온통 짝퉁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어서 짝퉁의 천국 중국 상하이 시장은 ‘사람빼고 모두다 짝퉁이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오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한 말은 고린도 교인들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라는 말, 다시말하면 그들이 진품인지 아니면 짝퉁인지를 확인하라는 뼈아픈 충고의 지적입니다. 당시 거짓 사도들로 인하여 여거 가지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하여 바울은 조만간 고린도 교회룰 방문하게 되는 때에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 불미스러운 일들을 짚고 넘어갈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자신을 사적 감정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두세 사람의 증인들과 함께 처리할 것임을 말하면서 고린도 교회 안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너나 할 것 없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죄악으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오늘의 현실을 두고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하며 파당을 지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돌아 보아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올바로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처한 문제의 해결점을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 삶이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것과 똑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자가 온전히 하나님이신 예수 안에 있을 때 본인 뿐만 아니라 공동체로서 교회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는 믿음, 예수 안에서 경험하는 체험의 신앙을 가진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확인하라는 말입니다.
앞서 공자가 향원이라는 짝퉁 학자를 싫어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짝퉁을 싫어하셨습니다. 예수는 마13:24-30에서 가라지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추수 때에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보는 짝퉁의 원조는 사탄, 곧 마귀입니다. 사탄이 짝퉁인 것은 사탄이 거짓의 아비로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인데(고후11:14, 요8:44), 예수가 이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이 짝퉁 사탄의 일을 멸하러 오신 것이기도 합니다. (요일3:8)
성경을 보면 여러가지 짝퉁이 등장합니다. 요일 4:1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라고 하여 거짓 선지자, 고후 11:13에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거짓 사도’, 마7:15에는 ‘노략질하는 거짓 예언자’, 벧후2:1에는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거짓 선생’이 나옵니다. 또 마24:24에는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게하는 거짓 메시야’가 그리고 갈 2:4에는 ‘가만히 들어와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하는 거짓 형제들’이 나옵니다.
오늘날과 같은 마지막 시대 끝자락의 때에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은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분별의 은사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구약의 사사시대와 같은 혼란의 시대, 무질서의 시대, 불신과 배신과 반목의 시대, 곳곳에 거짓이 판을 치는 시대, 마구잡이가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조차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별하기가 무척 어려운 시대가 바로 오늘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믿는 성삼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 대장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마귀를 대적하는 길에 모두 함께 나서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고 성경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짝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를 넘거나 사회문제가 될 만큼 심한것이 아닙니다. 온통 짝퉁이 난무하는 현상은 대체로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진정한 명품은 사물자체가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이자 실질적인 사용가치를 웃도는 아우라를 지닌 물건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래 숙성된 브랜드의 이념 속에서 세대를 뛰어 넘어 자신만의 향기와 가치를 일관되게 갖는 물건입니다. 값만 비싸서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물림 할 수 있는 질이 보증되고, 쓰면 쓸수록 빛를 발하는 것, 그리고 쓰는 사람에 의해서 만든 사람의 마음이 이해되는 하나의 예술품, 그것이 바로 명품입니다. 이것이 명품에 대한 정의라고 할 때 예수님은 제자인 동시에 성도인 우리가 이 땅의 명품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말씀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살다 보면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드러나지 않게 헌신하며, 믿음의 형제들을 굳게 세우며, 자신의 이름대신 하늘의 소망을 쌓아가는 명품 성도를 가끔 만날 수 있어서 험한 세상에서 큰 위로와 힘을 얻을 때가 있는 반며 저마다 큰 목소리로 세리의 기를 죽이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은 이중인격을 지닌 짝퉁성도들 때문에 마음으로 한없이 낙담되어 속으로 한없이 되새김의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난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부흥을 사모하여 간구합니까? 그 때 우리는 자신을 조용히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쫓는 믿음 안에서 굳게 서 있는지 자신을 확증해 보아야 합니다. 공동체로서 교회가 부흥하기르 소원한다면 교회가 명품 공동체로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빛을 발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있는지 확증해 보여야 합니다.
명품을 요란스럽게 광고하지 않습니다. 명품의 상표는 되도록 작게 표시해서 잘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명품 그리스도인은 나대지 않습니다. 조용합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반짝이는 것은이 다 금이 아니듯’ 예수 믿는다고 다 명품 그리스도인이 아닌 현실 속에서 ‘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로 말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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