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 2010

이런 개 같은 인간만 있다면

이번 주는 유난히 개와 관련된 신문기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주초에는 한인이 중남미에서 길거리을 나 다니는 개를 잡아다 한국식당에 개고기로 만들어 팔다가 경찰에 구속됐다는 신문기사가 있더니만 주중에는 이락에 파병되었다 돌아 온 군인인 주인을 현관에서 보고 반가워 어쩔줄 모르는 랫시만큼이나 큰 개를 찍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오늘 인터넷 신문을 보니 위의 제목과 같은 개이야기가 또 올라와 있었는데 생각할 만한 기사라 생각이 되어져 그대로 퍼다가 옮깁니다.

지난달 ‘세계 최고의 치료견’으로 불리며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백스터’가 사망했다. 7년 간 샌디에이고의 호스피스 병원에 평안과 사랑을 전파한 백스터는 장애견이다. 차우차우와 래브라도 리트리버 사이의 잡종인 백스터는 주인의 학대로 관절염 등 질병을 앓았다. 두 살 되던 해 안락사에 처해질뻔 하다가 멜리사 조셉 부부가 거두면서 새 삶을 출발했다.
19세로 숨지기까지 불편한 몸을 수레에 의지한 백스터는 죽음을 앞둔 환자 수백명을 보살폈다. 그들의 눈물 젖은 뺨을 핥고, 곁에 몇 시간이고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품에 안겼다. 열정적인 눈맞춤(아이 컨택트)으로 환자들에게 용기를 전했다. 이 쯤 되면 ‘영혼의 교감’ 차원이다.
이런 개가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7년 국내에서도 나온 책 ‘고마워 치로리’의 주인공은 일본 개다.

1992년 비오는 날 쓰레기장에서 새끼 다섯마리와 함께 발견된 유기견 ‘치로리’는 안락사 직전 구조됐다. 이후 13년 동안 치료견으로 활약하며 수많은 환자들을 돌봤다. 말을 잃은 노인의 입을 다시 열었다. 전신마비 환자가 치로리 덕분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술이라는 과학 위에 개와 인간의 정이 있었다.
치로리는 혈통 파악조차 어려운 잡종 중의 잡종이었다. 한 귀는 서고 다른 귀는 접혔다. 특히 다리가 볼품 없었다. 학대 후유증으로 뛸 수도 똑바로 앉을 수도 없는 짧은 다리였다. 치로리는 새끼를 모두 잃었다. 가해자는 인간들이었다. 치로리는 2006년 3월 암으로 죽었다. 사회에 사랑만 남기고 갔다.
이 시간에도 숱한 백스터와 치로리들이 이렇게 헌신하고 있다. 눈길만 돌리면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다. 포한이나 앙갚음이라는 단어는 모르는 ‘짐승’들이다.
이런 개들은 대개 사람처럼 웃는 법을 안다. 눈을 실눈으로 만들고 입가 근육을 올려 미소를 만든다. 상처 받고 마음을 닫은 이들을 보듬고 녹여내는 웃음이다.
고통은 종종 삶을 침식시킨다. 하지만 쓰임에 따라 더 큰 일을 위한 과정이 된다. 고난을 겪음으로써 아집에서 벗어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게된다. 세파를 통해 마음의 힘을 단련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성숙을 얻는 자는 생각보다 드물다. 분노와 원망으로 세상을 저주하며 거듭해 침몰하기 일쑤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욕설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